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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지회 정석준 회원 수필 「업보(業報)」

작성자 : 관리자   ㅣ   등록일 : 2016-09-06   ㅣ   조회수 : 2,355

 

<수필>

 


 

업보(業報)

경주지회 정석준(수필가)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그야말로 천태만상(千態萬象)이다.

어떤 사람은 부자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가난하게 태어나 며, 어떤 사람은 하는 일마다 성공하고, 어떤 사람은 하는 일마다 실패하며, 어떤 사람은 수명 장수하는데, 어떤 사람은 20살도 못 넘기고 단명하며, 어떤 사람은 미인으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박색으로 태어나는데,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그 원인을 기독교에서는‘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고, 우리의 조상들은 사주팔자(四柱八字)나, 조상 탓(잘되면 제 탓, 잘 못되면 조상 탓)으로 돌렸으며, 생물학자들은 한 낱 우연으로 돌렸고,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인간의 모순, 부조리로 돌렸으며, 불교에서는 업보(業報)로 설명하고 있다.

업이란 카르마(Krama)란 범어를 의역한 것인데 원어를 정확하게 우리말로 번역하기는 어려우나 대체로 행위(행동), 습관력, 버릇, 남아 쳐진 힘(殘在力), 꾸며내는 힘(構成力) 등과 비슷한 뜻을 가지고 있다.

 

  업은 몸(身)과 입(口)과 뜻(意)으로 짓는다. 즉 몸으로 살생(殺生)하고, 도둑질(偸盜)하고, 삿된 음행(邪淫)을 하고, 입으로 거짓말(妄言)하고, 두말(兩舌)하고, 욕지거리(惡口), 꾸밈말(綺語)을 하고, 뜻으로 욕심(貪慾)내고, 성내고(瞋恚), 어리석은 짓(愚痴)을 일삼고 있다. 이를 10악업(十惡業)이라고 하며, 그 반대로 몸으로 살려주고(放生), 부지런히 힘쓰고(勤勉), 바른 행동(正婬)을 하고, 입으로 바른 말(正語), 진실된 말(眞語), 사랑스런 말(愛語), 실다운 말(實語)을 하고 뜻으로 베풀어 주고(布施), 자비로 대하고(慈悲), 슬기롭게 행하는 것(智慧)을 십선업(十善業)이라고 한다.

 

  업을 분석하여 보면 첫째 선악의 의사, 둘째 의사 뒤에 일어나는 실제 행위(행동), 셋째 의사와 행동의 습관적 잠재력으로 이루어져 있다. 선악의 의사란 행위의 동기 목적을 말한다. 어떠한 행위도 그것이 책임있는 행위로 성립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의사를 동반하여야 한다. 예컨대 살인 할 의사와 목적이 없이 잘못하여 사람을 죽였다든가 자기의 자유의사가 아니고 강요된 행위로 인하여 살인하였을 경우에는 완전한 살인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실제 행동이란, 선악의 의사에 의하여 실제로 신체와 언어로서 행해진 선악의 행동을 말한다. 선악의 의사만 있고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 않거나 실제 행동이 실패하여 미수로 끝나면 그것은 행위가 완성되었다고 할 수 없다. 습관적 잠재력이란, 자기가 지은 업이 그대로 소멸되지 않고 그대로(그때마다) 습관력이 되어 그 사람에게 남게 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도둑질을 한 경우에 처음에는 양심의 가책이나 주위에 대한 두려움, 익숙하지 못한 행동 때문에 잘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두 번 성공하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양심이 마비되고 대담해지며 도둑질을 하는 방법도 향상되고 그것이 습관화되면 무의식적으로 도둑질을 하게 된다. 이것은 악사뿐만 아니라 선행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업보설이란 자기가 지은 업(業)은 반드시 자기가 받는다는 것인데,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욕지전생사(欲知前生事) 전생의 일을 알고자 하는가

금생수자시(今生受者是) 금생에 받은 것이 그것이다

욕지래생사(欲知來生事) 내생의 일을 알고자 하는가

금생작자시(今生作者是) 금생에 지은 그대로이다. (法華經)

 

  원인없는 결과는 없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지 콩 심은데 팥 나고 팥 심은데 콩 날리 없는 것처럼, 인과(因果)란 한 치의 어긋남이 없는 것이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만든 결과이며, 미래의 나는 오늘 내가 어떤 삶을 사느냐에 달린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를 탓할 것인가? 모두가 내 업보요 내 책임이다. 흔히 복권 당첨을 한낱 우연을 돌리지만, 이 세상에 우연이란 결코 없다. 모두가 필연이다.

 

  그런데 업은 고정불변의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나의 의지와 노력 여하에 따라서-예컨데 알코올이나 니코친 중독자라 할지라도 금주금연을 할 수 있고, 악한 사람도 개과천선(改過遷善)하면 착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처럼-얼마든지 변개(變改)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의 업보설은 타율설(他律說)이 아니라 자율설(自律說)인 것이다.

 

  자기가 지은 업은 반드시 자기가 받는다면 그 시기가 문제인데, 예컨대 갑이 을의 뺨을 때렸을 때 힘이 비슷하면 즉시 반격을 할 것이다. 그러나 힘이 약하면 마음에 응어리가 져(恨) 반격할 때를 기다리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자기가 지은 업은 조건이 이루어 져야 결과가 발생하는데, 현생에 짓고 현생에 받는 업을 순현수업(順現受業)이라 하고, 현생에 짓고 다음 생에 받는 업을 순생수업(順生受業)이라 하며, 현생에 짓고 한 생 격하여 받는 업을 순후수생업(順後受生業)이라 하고, 업을 받는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는 업을 순부정수생업(順不定受生業)이라고 한다. 한번 지어진 업은 가사 백천 겁을 지나더라도 멸하지 않고 그 값을 치르기 때문에 경전에 이르기를“가사 백천 겁을 지나더라도 자기가 지은 업은 없어지지 아니하고, 인연을 만날 때에 반드시 그 과보를 되돌려 받는다.고 하였다.

 

  그럼 여기서 설악산 오세암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설악산 오세암 대웅전에는 조그만 현판이 하나 걸려 있는데,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발로 한번 걷어찬 것이 볼 귀 세대로 돌아왔고

   떡한 개 준 것이 3년 양식으로 돌아왔네

   이와 같은 사실이 명백할진데

   불자여 모름지기 인과를 한치도 의심하지 말게나.

 

  이 시가 쓰여진 내력은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 강원도 설악산은 인제군수의 관할이었다. 지금부터 한 400여 년 전, 인제군수가 새로 부임하여 초도순시 차 오세암을 찾았다. 마침 점심때가 되었는지라 주지 스님이 점심상을 차려왔는데, 워낙 가난한 절이라 달리 대접 할 것도 없고하여 보리밥 한 그릇에 된장과 고추 몇 개를 내어 왔더니, 인제 군수가 벌컥 화를 내고 점심상을 뒤엎으며“이걸 나더러 먹으란 말이냐?하면서 볼기를 3대 때리는 것이었다. 엉겁결에 볼기를 맞은 노승이 저만큼 나가 덜어지자 무슨 마음이 들었던지 손을 내밀어 일으켜 주며, 수행하고 있던 아전에게“앞으로 이 절(오세암)에 3년 먹을 양식을 대 주라.고 분부하고는 훵하니 가버리는 것이었다. 볼기를 맞은 노승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볼기를 때릴 때는 언제이고, 3년 먹을 양식을 주라는 것은 또 무슨 연유인가? 노승은 이것이 화두가 되었다.

 

‘볼기3대 3년 양식, 볼기3대 3년 양식’

이 문제를 가지고 몇날 며칠을 씨름 하던 어느 날, 노승의 눈앞에 전생이 훤히 보였다.

 

  옛날 어느 마을에 백석이나 하는 시골부자 살았다. 섣달 그믐날 점심 때 쯤, 새해 차례에 올릴 떡을 빚어서, 하녀가 쟁반에 담아 주인마님에게 드리려고 가지고 오는데, 집에 기르던 개가 그 떡을 낚아채려고 뛰어 올랐다. 마루에 앉자서 이를 보던 주인이 벌떡 일어나서 개의 목을 걷어찼다. 그러자 개가‘깨갱갱하며 저만큼 나가 떨어졌다. 그러자 주인이 무슨 맘이 들었던지 떡 한 조각을 떼어서 개에게 던져주니 개는 덥석 그 떡을 받아먹었다.

 

  그러니까 전생의 부자는 죽어서 노승이 되었고, 개는 죽어서 인제 군수가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인과가 한 치도 어김없이 명명백백한 것을 깨달은 노승은 후세 사람들을 깨우쳐주기 위해 글을 지어 법당에 매달아 두었는데, 그것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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